내년이면 대학을 졸업한 지 정확히 20년이 된다. 지난 20년은 직장이라는 현실에 부딪히며 단단해지고, 그 와중에 짝을 찾으려는 본능에 충실하고, 가정을 꾸린 이후로 뒤늦게 꿈을 찾아 유학을 떠나고, 그리고는 외국에서의 생활이 점점 잦아지는 지금의 모습으로 탈바꿈해 온 세월이다. 그리고 이제 내 나이 40대 중반. 청춘이라고 하기엔 예전의 무모함과 날선 모습이 없어졌고, 그렇다고 늙었다고 하기엔 아직 갈길이 먼 어중간한 나이다.

갑자기 친구들이 그리워졌다. 그저 외국 생활의 외로움 때문인지, 아니면 직장과 가정에서의 내 모습에 너무 익숙해져 잊고 살았던 원래의 ‘나’라는 인간을 친구들을 통해 다시 투영시켜보고 싶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절실한 그리움 끝에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고 한 친구의 근무지를 간신히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전화기 너머로 듣는 친구가 나를 부르는 소리. “태진아!”

여자들이 결혼하고나면 ‘누구 엄마,’ ‘누구 와이프’로 살면서 자기 이름이 잊혀지는 것 같아서 서운해 한다더니, 거기에 비할 수야 없겠지만 누군가가 나를 직함이 아닌, “태진아” 하고 부른다는 것이 그렇게 신선하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연락이 닿은 친구는 다른 동기들과도 이미 가깝게 연락을 하고 지내고 있던터라, 덕분에 나는 순식간에 1명이 아닌 40여명의 대학 동기들 앞에 20년만에 ‘짜잔’ 하고 나타난 셈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20년만에 갑자기 수많은 친구들로부터 듣는 ‘태진아!’

인터넷 너머의 친구들은 나와는 무척이나 다른 삶들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어제까지 함께 수업을 들었던 것처럼 서로에게 전혀 서먹함이나 스스럼이 없었다. 모두가 결혼해서 애가 하나 둘 혹은 셋까지도 있는 모양이었고, 대부분이 건강하고 별탈없이 잘 살고 있는 듯 해서 고맙고 반가웠다.

친구들은 카OO톡에 대화방을 만들어놓고 틈틈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것이 나에게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전혀 다른 세계로 통하는 토끼굴 같다. 가끔 회사에서 잔뜩 스트레스를 받거나 회의 중간에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이 ‘토끼굴’로 기어들어가 다른 세상에 사는 친구들을 잠깐씩 만나고 오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현실의 ‘근엄’한 내 모습을 잠시 내려놓고, 20년 전처럼 ‘그놈’이 되는 나만의 비밀 해방구.

대체로는 그냥 일상의 잡다한 이야기들을 나누는데, 하루는 친구 하나가 이런 글을 스쳐가듯 올렸다. “태진아… 내가 학교 졸업하고 세상에 나와 보니 선배가 참 중요하다 싶더라. 치열하게 살지못한 내 게으름을 반성도 하지만 (중략) 네가 우리 후배들의 롤모델로 멘토가 될 수 있으면 참 좋겠다싶네. 이런 자리도 있고 저런 길도 있다고 자극도 주면서.” 순간 지나온 시간들이 머리속을 스쳐가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사실 친구들과 조금 다른 선택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어서 답답했던 적들이 많았다.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에 나오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 (the one less traveled by)’을 걷는 느낌… 하지만 고마운 것은 삶의 변곡점마다 꼭 ‘선배’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가 거기 그 순간에 있으면서 도움의 손길을 뻗쳐줬었고,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아직 보고싶은 내 친구들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올 연말에 한국을 휴가차 들르면 그들을 다시 만날 기대에 가슴이 뛴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며, 나에게 20년만에 다시 찾은 친구들이 있음에 감사한다. 아울러 내 인생의 꼭지마다 나에게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감사하게 된다. 이래저래 감사한 삶이고 감사한 만남들이다.

(2014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