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곳 싱가폴은 ‘Deepavali’ 라는 공휴일이다. 마침 우기가 시작되어서 밖에는 아침부터 기분좋게 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다. 애들 엄마는 어젯밤 비행기로 한국에 출장을 갔고, 서준이는 친구 Jason집에 아침부터 놀러가고 없다. 중딩 우리딸 서현이는 늘 그렇듯 방에서 혼자 뭔가를 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모처럼 혼자 집에 조용히 있다. 혼자. 집에. 조용히… 참 낯선 느낌이다. 뭘 하지?

아 참, 졸업 20주년 관련해서 글을 써야 한댔지? 두어달 전 쯤이었나? 내가 “여우굴”이라고 부르는 카OO톡의 부산약대 91학번 대화방에서 20주년 행사 준비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때 준비위원장인 상호가 우리 기수를 대표해서 누군가 동문회지에 기고할 글을 하나 써야 한다고 했는데, 그때 당연한듯이(?) 친구들은 그 숙제를 나에게 떠 넘겼다. 뭐지? 이 익숙한 느낌은?

생각해보니 20여년 전에도 그랬던 것 같다. 옛날 일기장을 뒤져서 deja vu인 듯한 기억의 자투리 하나를 찾아냈다. 1991년 10월 28일 월요일의 일기다.

“오늘 [언어와 표현] 시간에 단대별로 발표를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아이들은 모두 내가 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제 저녁 무기 실험보고서와 함께 그것을 준비하느라 밤 12:30경까지 책상에 앉아있었다. 오늘 아침, 아이들은 과연 나를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봤고 내가 그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음을 알게되자 안도의 한숨들을 내쉬었다.”

20년 전처럼,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나에게 떠 넘겨진 숙제를 갖고 고민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급기야 미친 놈 마냥 혼자서 킬킬 웃음도 나왔다. 세월이 지나도 결국 사람이란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인가? 내가 왜 이걸 군말없이 하겠다고 한거지? 귀찮게시리… 하지만 이 숙제아닌 숙제 덕분에 우리의 20년만의 만남을 곱씹어보고 또 지나온 20년간의 삶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싫지는 않다. 아니, 기분 좋다.

사실 우리가 대학을 졸업한지 20년이나 지났다는 것이 쉽게 실감 나지는 않는다. 특히나 지지난주 행사장에서, 졸업한 이후로 정말 처음 보는 친구들조차도 마치 엊그제까지 봤던 것처럼 서로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었던 걸 생각해보면, 우리들 사이를 20년이라는 세월의 강이 갈라놓고 있었다는 것은 더더욱 쉽게 와닿지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얼굴도 다들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설아도, 은정이도, 수정이도, 수경이랑 민자, 선주도 20년 세월동안 하나도 안변했다. 요즘 화장품이 좋아서 그런건가? 수진이 누나, 계형이 누나, 성미 누나, 수미 누나랑 민이형은 오히려 더 젊어졌고, 명희, 선희, 연희, 은희랑 수진이, 애영이, 순현이 그리고 성태도 모두다 더 예쁘거나 더 멋있어졌다.

누가 들으면 날더러 미친 놈이라고 할라나? 하긴, 사실 우리 눈에나 옛날 모습 그대로인 것 같지, 어디 실제 모습이 정말 그때 그대로일 수야 있겠는가. 아마 청하의 말처럼 “우리가 가장 반짝이던 시절” 서로에게 보여줬던 때묻지 않았던 모습들이 지금의 얼굴에 그대로 투영이 되면서 나타나는 착시현상 아닐까. 광교의 사람좋은 착한 웃음, 은애의 새침함, 준도의 수줍음, 영신이의 애교와 미애의 자상함, 상호의 허허실실, 상은이의 큰 눈과 청하의 긴 생머리, 연의의 엉뚱함, 영화의 통통튀는 발랄함, 정옥이의 씩씩함과 인정이의 다정함… 다들 그때 그 모습들 그대로다.

우리들에게 20년 세월이 지났다는 것을 실감한 것은 공식 행사가 끝나고 2차를 위해 자리를 옮겨서 부터였다. 학창시절 연애나 진로에 대해 수다를 떨었을 친구들은 이제 우리가 아닌 자식들의 연애나 진로에 대한 얘기들을 하고 있다. 결혼을 일찍해서 애가 벌써 고3이라는 혜진이, 입이 짧은 아이들 때문에 고민하는 영화와 지혜, 큰애를 자사고에 보낸 비결에 대해 강의(?)하는 정화, 요리사의 꿈을 가진 대견한 딸을 둔 청하, 당찬 리더십의 전교 부회장을 키워낸 영신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귀여운 늦둥이를 키우고 있는 은숙이… 친구들 한명 한명 일일이 붙들고 아이들 이야기며 살아온 이야기 듣고 싶었지만, 하룻밤으로는 시간이 부족함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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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약국이나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보니, 나는 어쩌면 우리 동기들을 대신해서 졸업20주년에 즈음한 글을 쓰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지난 20년 동안 남들과는 조금씩 다른 선택을 하며 살아왔고, 그 때문에 이제 겉보기엔 친구들과 너무나도 다른 이질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벽 서너시가 다 되도록 이야기 꽃을 피우다보니 우리가 살아온 지난 세월에 ‘다름’보다 ‘비슷함’이 더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연애를 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갖게 되었다. 일과 가정을 병행하며 힘들어하기도 했을테고, 가족을 위해 타협하고 희생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가 나이드는 만큼 부모님들이 연로해지시면서, 그 때문에 가슴 아픈 일을 겪은 친구들도 있다. 내가 그렇게 살아왔고, 내 친구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가끔 TV나 영화를 보다가 혹은 음악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훌쩍거릴때가 있다. 부끄럽게도 요즘 들어 그런 횟수는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90년대 대중음악의 열풍을 다시금 몰고온 ‘토토가’를 시청하면서도 그랬고, 최근들어 시즌 3를 시작한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면서도 그런다. 꼭 향수를 자극하는 것들이 아니라도 그렇다. 그저 ‘친구’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함께 하는 장면만 보아도 울컥할 때가 있다. 나에게 마흔 중반이라는 나이는 사회생활의 최고 절정으로 치고 올라가는, 아직 한창 뜨거운 나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시대를 살아오며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인생의 굴곡을 경험하고 있는 동년배들에게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끼며 감상에 젖게도 하는 나이같다. 그래서인지 지난 20주년 행사를 계기로 ‘나에게도 “친구”가 이렇게 많이 있었구나’라는 자각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이 벌써 또 보고 싶다.

이제 20주년 행사는 끝이 났지만, 우리들의 우정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아니, 앞으로 우리들의 서로에 대한 마음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애틋해지지 않을까? 이번에 30여명 남짓 모였었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함께 할 수 없었던 다른 친구들도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고 많이 보고싶다. 25주년에 (싱가폴에서) 다시 모이자는 약속, 더 많은 친구들과 꼭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친구들아, 고맙다. 아무 이유없이 고맙다. 나와 함께 인생의 ‘가장 반짝이던 시절’을 보내줘서 고맙고 지난 20년의 시간을 잘들 살아줘서 고맙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가까이서건 멀리서건 서로 생각해 주는 마음들 만으로도 고맙다. 얘들아, 다들 행복하고 건강하렴. 끝으로 영신이의 고백처럼… 모두 다 “사랑한데이.”

(2015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