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이가 스타워즈에 심취해 있다. 특히나 주인공인 Luke Skywalker의 역할에 몰입해 있다보니, 나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퇴근하고나면 Luke Skywalker의 아버지이자 최고의 악당인 Darth Vader 신세가 되곤 한다.  소파 위를 날아(?)다니며 Luke와 결투를 하다가 Darth Vader의 전매특허인 특유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I am your father! (내가 니 애비다!)”를 외치는 것은 필수 코스다.

아침에 식탁에서 서준이에게 ‘간밤에는 무슨 꿈 꿨어?’ 하고 물어도 서준이는 어김없이 스타워즈 꿈을 꿨다고 한다. 무슨 스타워즈 꿈을 하루도 안빼먹고 꾸는지… 그리고는 밥 먹는 것은 잊은 채 장황하게 꿈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한다. 내용은 대체로 Luke를 위시한 Light Side의 전사들이 Dark Side의 Darth Vader, Darth Maul, Emperor Palpatine 등과 싸우다가 극적으로 이긴다는건데, 듣고 있으면 저게 진짜 잘때 꾼 꿈이야기인지, 아니면 지금 밥 먹으면서 실시간으로 눈뜨고 꾸는 꿈인지 궁금해지곤 한다.

나도 어렸을 때 ‘이야기’를 무척이나 좋아했었던 것 같다. 부모님께서 없는 살림이지만 아들 4형제를 위해 장만하셨던 전집이 몇가지 집에 있었는데, 그 중에서 빨간색 양장본의 세계명작동화 세트는 어머니 말로는 내가 본전을 다 뽑았다고 한다. 나는 책을 읽는 것보다 책을 읽자마자 어머니께 읽은 책 이야기를 해 드리는 것을 더 즐기곤 했다. 주로 부엌 문에 걸터앉아서 부엌에서 일 하고 계시는 어머니께 한껏 과장된 목소리와 몸짓으로 변사처럼 이야기를 해드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

일하다보면 직원들에게 ‘이야기하는 능력 (storytelling)’에 대해 종종 요구하곤 한다. 똑똑한 직원이 엄청난 슬라이드나 매우 복잡한 spreadsheet는 잘 만들면서, 정작 그 내용을 전달하는데는 너무나도 부족한 것을 볼때면 storytelling의 중요성을 더더욱 절감하게 된다. 사실 사업전략도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다. 현재의 처해있는 배경이나 상황이 어떠한지, 성취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계획이 왜 필요한지, 그 계획을 실행하는데 어떠한 예산과 자원이 요구되는지 등등이 하나하나 일종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1년에 한번씩 검토하는 경영계획이나 마케팅 전략에는 복잡한 시장관련 데이터나 숫자만 가득한 것 같아도, 결국은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도록 명료하고도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한번은 어느 부하직원이 정기적으로 갖는 면담시간에 나에게 ‘storytelling을 잘하고 싶은데 무엇이 필요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내 생각에는 내용의 핵심을 우선 본인 스스로가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출발점이고, 거기에 더해서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내용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공감력도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이 과연 내 의도대로 이해하고 따라올까’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소설 <개미>로 유명한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상상력 사전>에 보면 ‘내가 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상대방의 생각’에 다다르는데까지 거쳐야 하는 단계가 10가지나 되고, 그만큼 내용이 중간에 잘못 전달될 가능성이 많다고 하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때로는 직원들이 어떤 내용을 발표할 때, ‘그 내용을 집에 있는 조카나 할머니에게 설명한다고 생각하고 다시 해보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아예 슬라이드나 발표자료를 사용하지 말고 얘기해 보라고도 한다. 내용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고, 핵심을 제대로 안다면 굳이 어렵게 설명하지 않고도 내용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야기꾼’이라고 하면 입만 열면 번드르르한 말로 사람들을 홀리는 사기꾼 이미지가 연상될 수도 있다. 실속이 없이 말 뿐인 사람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실속은 있는데 그걸 말로 풀어내지 못한다면 그 또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Storytelling이 가면 갈수록 중요해 질 것이다.

(2014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