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와 급한 업무들이 한바탕 지나가고 난 어느 오후. 내 방에 누군가 얼굴을 빼꼼 들이민다. 서로 출장이 잦아 같은 사무실에 있으면서도 마주칠 일이 한동안 없었던 동료다. 나는 잠시 머리도 식힐 겸 의자를 뒤로 쭉 빼면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안녕? 야~ 오랜만이네? 지난주에 대만은 잘 다녀왔니?” 우리는 아주 의례적인 인사를 주고받았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는 간혹 이렇게 내 방에 들르곤 한다. 그럴 때면 우리는 대체로 주말에 있었던 일이나 최근에 다녀온 출장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워낙에 늘 밝게 웃고 씩씩한 친구인데, 언젠가 한번은 자기의 ‘센 이미지’에 대해서 나한테 고민(?)을 털어놓길래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해 준 적도 있다. 그에게는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판단하고 실행할 것이 요구되는 업무가 많다 보니 남들이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세다’는 이미지 자체가 꼭 부정적인 것이 아닐뿐더러 그의 사람 됨됨이가 이해심이 부족하거나 냉혹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지난주 출장이 얼마나 생산적이었는지, 거기서 만났던 사람들이 얼마나 모두 다 열정적이었는지 등등을 신이 나서 이야기하기에 열심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런데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이야기의 초점은 ‘일이 좋기는 한데 너무 많다’는 쪽으로 점점 옮아가는 듯했다. 나도 그가 때로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들이 터져서 하루 24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는 결국 자기 얘기를 계속하다가 그만 눈물이 그렁그렁 해지고 말았다. 재빨리 티슈를 건네려고 둘러보니 티슈 박스가 없다. ‘이런 젠장!’ 대신 얼마 전에 배달 온 음식에 딸려왔던 냅킨만 서랍에 몇 개 있다. 좀 우스웠지만 그에게 냅킨을 건넸다. 자신도 눈물을 쏟은 것이 스스로 당황스러웠던지, 잠시 말을 머뭇거리던 동료는 사실 자기는 그저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좀 필요했던 거라며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내가 오히려 더 고마웠다.

즐겨보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얼마 전에 한국의 대표적인 ‘센 언니’인 제시가 자신의 ‘센’ 이미지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겉모습과는 달리 자신은 사실 속이 여리고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고… 그러고 보니 나는 예전에도 다소 ‘센’ 이미지를 가진 여직원들의 눈물을 본 적이 더러 있다. 이유는 매번 달랐었지만.

한 번은 일 잘하는 부하직원이 힘겨운 프로젝트를 몇 개월 동안 끈질기게 매달린 끝에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적이 있다. 마침 연중 성과관리의 중간 점검을 해야 하는 시기인지라, 그와 독대를 하면서 최근에 마무리한 프로젝트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내 이야기의 대부분은 칭찬과 격려였다. 그런데, 면담 말미에 혹시 다른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물었더니 “네”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무슨 어려운 얘기인지 말을 바로 못 꺼내고 한참 머뭇거리는데 갑자기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깜짝 놀랐다. 능력이 뛰어나고 평소에 성격도 강인한지라 내가 무척 아끼고 신임하는 친구인데, 무슨 일 때문에 눈물을 보이는 건지.

그런데 그 친구가 힘겹게 꺼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너무 나 자신이 부끄럽고 미안해졌었다. 이유인즉슨, 성공적으로 끝난 그 프로젝트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내가 보낸 한 통의 이메일에 그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그 이메일을 쓸 때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었기에 나는 그 일로 그가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고 해명을 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친구의 관점에서 보자면 충분히 상처를 입었을 수도 있겠다’, ‘내가 조금 더 사려 깊었어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고 나서, 사람이 일을 잘 하고 겉으로 다부져 보인다고 해서 그의 마음이 철갑처럼 단단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스스로를 일깨웠다.

내가 센 언니의 눈물을 보았던 또 다른 경우는 말레이시아/싱가포르에 부임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그때 나는 제일 먼저 나의 직속 부하들인 임원들과 우선 면담을 하고, 그 다음엔 그들의 부하직원인 중간 관리자들을 면담하고, 최종적으로는 일반 사원들 중의 일부를 인사팀의 도움을 받아 우선순위를 정한 뒤 면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 경력이 이미 관리자 급이 될 것 같은 직원 하나가 있었다. 이야기를 나눠 보니 업무능력도 뛰어나고 본인 스스로도 일에 대한 욕심이 많은 친구인데, 지금껏 그의 능력에 걸맞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새로 부임한 사장인 나에게 강한 눈빛과 어조로 마치 항의하듯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직감적으로 아주 ‘센 언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세상은 그런 법이다. 매사가 공평하지는 않은 것이 세상이고, 능력 있다고 해도 항상 자기 원하는 대로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는 것이 회사다. 막 새로 부임한 내가 무엇을 당장에 해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껏해야 그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의 심정에 공감한다고 얘기해 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센 언니가 갑자기 나의 ‘이해한다’는 그 말에 울컥하더니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그때는 내 방에 크리넥스 티슈 박스가 아주 적당한 곳에 놓여있었기에 나는 재빨리 티슈를 뽑아서 그에게 건넬 수 있었다.

우리 주위에는 자칭 타칭 ‘센 언니’가 많은 것 같다. 최근에 새로 생긴 말인지 원래부터 있던 말인지 ‘걸 크러시 (girl crush)’라는 표현도 ‘센 언니’를 얘기할 때 함께 많이 쓰인다. ‘센 언니’가 많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여리고 눈물 많은 여자들을 강해질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불합리한 요소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본다면 어쩌면 ‘센 언니’는 남들만큼이나 (아니면 남들보다 더) 예민하고 여린 본연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는 것이 싫어서 민낯 위에 가장해서 드러내는 얼굴, 일종의 반작용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센 언니’들을 만났을 때 ‘세다’는 겉인상으로만 판단해서는 안될 일이다.

(2016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