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가을이면 회사의 그해 실적을 미리 가늠해보고 이듬해의 목표와 예산, 전략 등을 논의하는 중요한 회의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재무팀에서 올 하반기 집행 경비에 대한 예측과 내년도 출장경비 등을 포함한 예산 계획을 알려달라고 하기에, 상반기 동안의 출장 내역을 검토하다가 문득 예전에 미국에서 일할 때가 떠올랐다. 지금도 출장이 많지만, 그때는 지금보다도 더 많았다. 당시에 내가 담당했던 업무 자체가, 한 제품에 대한,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시장에서의 마케팅을 책임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유럽으로 남미로 아시아로 출장을 다녔었다. 집에 있는 날보다 출장으로 떠나있는 날이 더 많았다. 몸은 피곤했지만 나는 그 일이 너무 좋았다.

내가 첫 직장인 CJ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을 때, 나의 꿈은 해외 출장을 한번 가보는 것이었다. 당시 회사에서는 직원이 해외 출장을 갔을 때 출장 업무가 종료된 이후에 현지를 며칠 동안 배낭여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제도가 새로 생겨서 사내에서 홍보를 하는 중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멋진 제도였지만, 나 같은 말단 연구원에게는 거의 해외출장의 기회 자체가 없었기에 그야말로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그 와중에 한 번은 본사의 부사장님이 연구소를 방문해서 전 직원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분은 회사가 글로벌한 역량을 갖도록 성장하는데 연구원들이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는 말씀 끝에 혹시 질문할 사람이 있으면 질문을 하라고 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강당의 맨 뒷구석에 있던 나는 눈치를 좀 살피다가 손을 들었다. “방금 부사장님께서 글로벌화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는데, 연구원들이 글로벌 역량을 키우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나가서 보고 배울 기회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 같은 일반 연구원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혹시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 질문을 하고 나서 같은 팀 선배들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엄한 질문했다고.

나의 첫 해외출장 기회는 내가 연구원 업무에서 연구기획 업무로 보직이 변경된 후에야 비로소 주어졌다. 그때 연구소에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다국적 제약회사의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은퇴하신 재미 과학자께서 연구소장으로 새로 부임하셨는데, 내가 그분을 모시고 미국 출장을 갈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출장지는 미국 동부의 뉴저지. 그런데 출장 일정을 소장님과 논의하면서 약간 놀란 부분이 있었다. 소장님은 일분 일초도 아껴가며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빡빡하게 많은 일정을 소화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현지에서 지사 사무실도 들르고 미국 동부의 한인과학자들도 만나고 학회도 참가해야 하는 등등의 빡빡한 일정이 세워졌다. 나로서는 처음 가보는 해외출장인지라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출장 갔다가 사무실이랑 호텔만 보고 돌아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결국 사고를 쳤다. 출장 막바지에 학회를 참석하는 일정이 그나마 약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기회일 것 같아서 학회 기간 중 몇 시간 정도는 학회장을 좀 벗어나 미국을 ‘탐험(?)’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하지만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할지는 딱히 계획이 없었다.  그런데 호텔방에 있는 잡지를 뒤적이다가 ‘나이아가라 당일치기 관광’ 안내가 눈에 들어왔다. 나이아가라? 나이아가라 폭포를 여기서 갈 수 있는 거였어? 나는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이거야!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다. 길이 좀 멀기 때문에 이른 새벽에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걱정이 되어 잠깐 망설이다가, 일단 앞뒤 안 가리고 예약을 해버리고 말았다.

다음 날. 정말 캄캄한 새벽에 도둑고양이 마냥 조심스레  호텔을 빠져나왔다. 약속 장소에서 커다란 밴을 타고서 나이아가라를 향해 출발했다. 그때까지도 몰랐다. 나이아가라 폭포가 편도로만 장장 650 킬로미터, 7시간이 족히 걸리는 먼 곳이었다는걸. 폭포를 거의 ‘찜!’만 하고 온 것 같은데 돌아왔을 때는 이미 캄캄한 밤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때는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 따로 연락을 주고받을 방법도 없었다.  늦게서야 얼굴을 드러낸 나에게 소장님은 노발대발하셨다. “도대체 함군은 (소장님은 나를 ‘함군’이라고 부르셨었다.) 오늘 어느 세션들을 들었길래 하루 종일 얼굴이 안 보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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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CJ에 근무할 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해외 출장이었다. 그러니 내가 미국에서 일하게 되면서 일년의 반을 해외출장을 다니는 업무를 맡게 되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출장을 얼마나 밥 먹 듯 다녔는지 한번은 이탈리아를 하루 전날 계획해서 당일치기로 다녀온 적도 있었다. 그리고 나름 그렇게 열심히 돌아다닌 만큼 일의 성과도 좋아서, 그 일을 맡은 2년 차 연말에는 성과평가를 최고 등급으로 받게 되었다. 나는 너무 신이 났다. 좋아하는 일도 하고 인정도 받고, 일석이조라고 생각했다.

그날 퇴근해서 초등학교 2학년이던 서현이를 붙들고 약간 흥분한 듯 얘기했다. “서현아, 아빠 이번에 회사에서 일을 잘해서 엄청 칭찬 들었다?” 서현이가 눈이 동그래지더니 “그래? 상도 있어?”라고 묻는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멈칫했다.

“음… 글쎄? 왜? 무슨 상 받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런데 서현이의 대답에 나는 머리를 망치로 한대 맞은 것 같았다.

“No more travel for you! (아빠, 이제 출장 안 다녀도 되는 거!)”

방긋 웃으며 얘기하는 서현이에게 나는 그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가?’ 순간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졌었다. (2009-02-16, 출장유감)

***

많은 직장인들에게 출장이란 회사생활을 하면서 좋건 싫건 꼭 필요한 일의 일부분이다.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는 현실을 생각하면 ‘일’이 곧 ‘삶’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왕에 출장을 다녀야 한다면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 직원들을 해외 출장을 보낼 때면 “가서 호텔이랑 회의장만 왔다 갔다 하다가 오지 말고, 나가서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 먹고 오라”고 한다. 그런 내 말에 대부분은 고마워하지만,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는 직원들도 있다.

하지만 ‘일’이 곧 ‘삶’인 한편, ‘삶’을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겠다. 일만 하느라 아이들 크는 모습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2016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