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이곳 싱가포르에서는 2016 리우 올림픽 때문에 난리가 났다. ‘싱가포르 건국 이래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남자 100미터 접영에서 금메달을 딴 스물한 살의 싱가포르 청년 조셉 스쿨링. 그가 리우에서 돌아올 때 싱가포르 창이공항이 환영 인파로 터져나갔음은 물론이요, 퍼레이드를 비롯해서 그를 위한 환영행사가 앞으로 나흘 동안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도심 곳곳에는 빨간색 하얀색의 싱가포르 국기가 펄럭이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인 곳에서는 그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한국이 스포츠 강국인 덕분에 금메달 소식이 그렇게 신기하지만은 않은 나로서는 다소 흥미로운 광경이다.

내가 이 뉴스에 주목하게 된 것은 금메달 그 자체가 아니라, 선의의 경쟁을 펼친 주인공들의 훈훈한 뒷이야기 때문이다. 사실 이 경기에 앞서 가장 많이 주목을 받은 선수는 마이클 펠프스였다. 올림픽 통산 역대 최다인 28개의 메달, 그리고 그중에서 23개가 금메달인 전대미문의 수영 영웅 펠프스에게 이 경기는 그가 은퇴전에 치르는 마지막 개인종목 경기이자 올림픽 4연패를 노리는 종목이기도 했다. 자연히 세계인의 이목이 펠프스에게 쏠려있었다. 그런데 싱가포르의 한 젊은이가 어찌 보면 (싱가포르인을 제외한) 많은 이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하지만 경기를 막 끝낸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도 밝아 보였다. 특히나 전광판의 기록을 확인하며 함께 활짝 웃는 모습, 그리고 펠프스가 10살이 어린 경쟁상대 조셉을 안아주며 축하해 주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큰 감동이었다. 알고 보니 두 사람에게는 오래된 인연이 있었는데, 조셉이 13살일 때 두 사람이 직접 만난 적이 있었고 어린 조셉은 그 만남으로 인해 수영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열망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펠프스는 조셉에게 영웅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경기가 끝나고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도 조셉은 그가 펠프스와 함께 레이스를 펼친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영광이었는지, 그리고 그가 펠프스에 대해 얼마나 큰 존경심을 갖고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이에 대해 펠프스는 조셉의 성장과 승리를 지켜본 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 매우 보람 있고 행복한 일이라며, 자기로 인해 수영의 꿈을 키우게 된 후배의 성공을 따뜻하게 축하해 주었다. 치고 올라오는 어린 세대의 성공과 성장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고 성원하는 펠프스의 모습에 덩달아 가슴이 뭉클해졌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가 한국 사회를 가리켜 “시기(猜忌) 사회”라고 지칭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아랫사람 혹은 젊은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윗사람이나 기득권 세대가 불안하게 느끼고 이를 시기하는 현상이 한국 사회에 만연하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다. ‘시기 사회’라는 표현은 보편적으로 쓰이는 말은 아니지만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는 비슷한 맥락에서 ‘꼰대’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표준어가 아니다 보니 정확한 정의는 잘 모르는데, 대체로 못난 기성세대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한다. 자기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다른 사람의 처지에 대해 이해하려 들지 않고, ‘조언’이라는 미명하에 반기지 않는 잔소리를 하고, 다른 사람 특히 젊은이들을 함부로 막 대하는 것 등이 특징이다.

‘꼰대’라는 표현과 비슷하게 특정 세대를 지칭하는 요즘 유행하는 또 다른 은어가 있다. 바로 ‘아재’다. ‘아저씨’를 줄인 말인데, 주로 한참 뒤떨어진 옛날 개그를 하는 등 요즘 젊은 세대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중년 남자들을 가리킬 때 이 표현을 쓰는듯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재’는 언급되는 맥락이 ‘꼰대’처럼 아주 부정적이지는 않다는 점이다. 다소 구식이더라도 조금은 귀엽게 봐줄 만할 때 ‘아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요즘 각종 TV 프로그램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중년 남자들, 예컨대 유재석, 신동엽, 차승원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 이 나이 또래이다 보니 그런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만약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거라면 나 역시 ‘아재’라서 그런 게 틀림없다.)

반면 똑같은 중년의 아저씨임에도 ‘아재’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면 박진영, 유희열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오빠’라고 불리는 게 훨씬 자연스럽다. 특히 박진영은 나에게 놀라움의 대상이다. 그는 K-Pop Star에서 심사위원을 할 때 “공기반 소리반” 같은 이상한 논리를 동원해가며 젊은 지원자들에게 거침없이 날카로운 평을 퍼부었는데, 나는 그의 심사평이 말이 되는지 안되는지를 떠나서 그가 본인만의 확고한 가치관과 논리를 구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일관되고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 너무나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지적질(?)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은 ‘잔소리’가 아닌 보석 같은 ‘조언’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솔직히 부럽기도 했다. 이유가 뭘까? (그나저나 박진영은 나하고 동갑이다. 그래서 더 부럽다.)

내 생각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그의 조언은 ‘꼰대’들이 주로 하는 ‘내가 예전에 해 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조언해 달라고 요청받지도 않았으면서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떠드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는 바로 지금 이 시대의 유행을 창조하고 있고, 그래서 음악에 관한 한 그가 해 주는 조언들은 대중음악을 추구하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너무나 시의적절하고 정확한 조언이다. 당연히 젊은이들은 그의 조언이 혹독할지언정 간절히 듣고 싶어 한다. 둘째, 그가 쏟아내는 날카로운 지적들은 상대방이 더욱 성장하고 성공하기를 바라는 좋은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다. 단순히 ‘내가 너보다 경험도 많고 아는 것도 더 많다’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하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나이를 먹다 보니 나에게도 조언을 구하는 후배나 직원들이 간혹 있다. 근래 들어서는 출장차 한국을 들렀다가 일부 대학에서 강연을 하고 온 적도 더러 있다. 얼마 전에는 이화여대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여대에서의 강연은 처음인지라 나는 무척 신이 났다. 하지만 흥분이 가라앉고 나니 이내 걱정이 밀려왔다. 내가 신이 났던 것은 혼자서 엄청난 착각(?)에 빠져서 그랬던 것일 뿐, 현실은 내가 학생들 앞에서 잘 해봐야 ‘아재’, 까딱 잘못하면 ‘꼰대’가 될 수도 있는 상황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에서 유시민 씨는 품격있게 나이 먹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는 나이가 듦과 함께 생각도 조금씩 바뀌어갈지 모르지만 항상 젊은 세대의 소망을 존중하고 그들의 편에 서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나도 그러고 싶다. 나이가 먹을수록 후배들, 젊은 세대들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더 애쓰고 그들과 눈 높이를 맞춰서 공감하려고 노력하고 싶다. 단순히 꼰대가 되는 것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생각해 보면 나도 누가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하는 것이 무척이나 싫었었다. 어릴 때도 그랬고 사실 지금도 그렇다. 특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만 힘이 부쳐서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옆에서 나도 이미 알고 있는 나의 부족함을 굳이 지적하기보다는 말없이 바라봐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더 격려가 되곤 했었다. 그래서 나도 그런 어른이 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자식한테도 조심하지 않으면 꼰대가 되기 십상이다. 믿을 수 없지만 서현이가 올해 고등학생이 되었다. 몇 년 전에 나는 서현이에게 내가 자기 나이 때 썼던 일기장을 건네주며 읽어보라고 한 적이 있다. ‘아빠도 너만 할 때가 있었고, 나도 네가 하는 고민들을 했었단다’라는 메시지를 주려는 의도였지만, 나는 나중에 그 일을 후회했다. 서현이가 살고 있는 세상과 내가 살았던 세상은 너무도 다르고, 그래서 서현이가 하는 고민들이 내가 했던 고민들과 질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웬만해선 서현이한테 ‘OO하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기껏해야 ‘아빠는 이런 적이 있었단다’라고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해 주는 정도다. 그것도 둘 다 기분이 좋을 때만 그렇게 하려고 한다. 내 경험담을 듣고 뭔가를 느껴줬으면 하는 욕심은 있지만 그럴 것인지 말 것인지는 서현이가 정할 일이다.

아재가 될 것인가, 꼰대로 남을 것인가… 하루는 밖에 볼일이 있어서 깃이 있는 티셔츠를 입고 나가는 나에게 서현이가 “아빠. 그거 깃을 세워서 입으면 아재래”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잠깐 멈칫했다가 평소처럼 그냥 깃을 세운 채 나갔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서현아, 아빠는 ‘오빠’가 되는 건 바라지도 않아. 그나마 ‘꼰대’가 아니라면 ‘아재’ 정도는 감지덕지란다.

(2016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