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에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지방에서 홀로 지내신다. 나는 가끔 퇴근길에 전화를 드려서 어머니께 칭얼거리는 것으로 재롱(?)을 대신하곤 한다.

“엄마, 벌써 목요일이네? 이번 주는 너~무 바빠서 되게 빨리 지나간 것 같아요. 아들 힘들엉… 힝.”

“좋겠네, 아들? 이제 하루만 더 일하면 또 이틀 쉬는 거잖아?”

“근데 엄마, 주말이 이틀은 너무 짧은 것 같애. 뉴스에 보니까 어떤 회사는 일주일에 나흘 일하고 사흘 쉬는 걸 도입한다고 하는데, 정말이지 주말이 사흘 정도는 되었으면 좋겠어.”

사실 그랬다. 그토록 기다렸던 주말이 별로 한 것도 없이 ‘훅’하고 지나가 버려서 엄청난 허무함을 느끼며 출근했던 게 바로 엊그제였는데 벌써 다시 주말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한편으론 좋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주말 역시도 휙 지나가 버리겠지 싶어서 바보처럼 미리 허무한 느낌마저 들었다. 누군가가 우스갯소리로 일주일은 원래 ‘워얼화아수우목금퇼’ 이라고 하더니 주말은 항상 “퇼” 처럼 후딱 지나가버리는 것만 같다.

그런데 그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주말이라고 이틀이나 쉴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으냐? 농사짓는 사람들은 주말이 어디 있니? 해 뜨면 해 질때까지 주말이고 주중이고 없이 내내 일하잖니. 장사하는 사람들은 또 어떻고? 주말이라고 문 닫고 쉴 수나 있어? 너는 그 정도면 행복한 거야.”

하긴 내가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해본 적은 없지만, 그 심정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학교가 주 5일 수업으로 바뀐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닌데, 어릴 때 토요일에 학교 갔다가 오면 남은 오후 자투리와 일요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깝던지… 토요일에는 아예 학교를 안 간다는 다른 나라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세상이 예전보다 여유로워졌다고는 하지만, 생계를 위해 주말에 쉴 수 없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많이 있다. 심지어는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지만, 상사의 눈치 때문에 주말에도 특근이며 야근이며 해야 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어머니 말씀처럼 내가 주말 이틀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고 쉴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해야 할 사치이고 특권일지도 모른다.

“엄마. 근데 어떤 시대에 태어나는가도 사람의 행복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어디에서 태어나는가도 그런 것 같아. 여기는 주말이면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들이 공원 같은데 많이 모여있거든? 그중에는 어려 보이는 친구들도 많은데, 가끔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어려서부터 다른 나라에 파출부로 와서 살아야 하는 인생이란 게 어떤 느낌일까?’ 단지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말이야.”

이번에도 어머니가 내 생각을 바로잡아주신다.

“그렇긴 한데 사실 인도네시아, 필리핀은 그래도 나은 거야. 요즘 시리아니 뭐 그런 곳 봐라. 그런 나라에서는 남아 있으면 폭탄 터져서 죽고, 그 나라를 탈출하려다가는 총 맞아 죽고, 기껏 탈출을 해도 배 타고 떠돌다가 바다에 빠져 죽고… 그런 사람들 보면 얼마나 기가 막히고 불쌍하니. 아프리카는 또 어떻고…”

맞는 이야기다. 그나저나 어머니는 나의 모든 이야기를 ‘감사하고 살아야 할 이유’로 연결짓는 놀라운 재주가 있으신 것 같다.

<꾸뻬 씨의 행복여행 (Hector and the Search for Happiness)>이라는 책에 보면 사람의 행복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변수 중에 “It’s harder to be happy in a country run by bad people. (나쁜 사람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행복하기란 쉽지 않다)”라는 말이 나온다. 어디에서 태어날지를 내가 정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어디서 태어났느냐가 사람의 행복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교외에 있는 집에서 학교로 가려면 West Philly라고 불리는 흑인들이 주로 많이 사는 동네를 지나다녀야 했다. 그런데 그 지역의 음습한 분위기나 열악해 보이는 환경이 인접한 여타 지역과 어찌나 대비가 되는지,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함께 공부하던 형님과 나는 그 동네를 함께 지날 때면 ‘미국 사회는 ‘인종갈등과 빈부격차’라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나라 같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그런데 요즘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타인에 대한 관용이 노골적으로 무시되고 또 백인 경찰과 흑인들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는 뉴스 등을 접하다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사람이 행복해지기 점점 더 힘든 사회가 되어 가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말레이시아에 처음 부임했을 때, 그 나라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상대적으로 무척 좋았다. 말레이시아도 미국처럼 다민족 국가인데 미국과는 달리, 나라를 구성하는 다양한 인종들이 조화롭게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인상은 첫인상이었을 뿐.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니 표면 아래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말레이시아는 비교적 유순한 국민성 탓에 그 사회가 안고 있는 인종 간의 갈등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뿐이지 생각보다 갈등의 정도가 무척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 나쁜 것은 그런 갈등을 해소하려고 노력해야 할 정치인들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갈등을 오히려 더 조장하고 이용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사석에서 직원들은 곧잘 자기 나라 정치 현실의 실망스런 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한국은 어떠냐고 묻곤 했다. 말레이시아보다 경제대국이고 한류 덕분에 위상이 한껏 높아진 한국은 여러모로 훨씬 더 나을 거라는 생각에서 던지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이나 요즘 많은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한국이 딱히 말레이시아보다 더 낫다고 하기도 힘들 것 같다. 오히려 UN이 발표하는 [세계 행복 보고서 (World Happiness Report)]라는 보고에 따르면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내가 지금까지 살았거나 지금 살고 있는 미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보다 훨씬 낮은 58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 맥락에서, 외국에서 수년간 살다가 최근에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귀국한 한 지인은 한국에서 택시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기는 요즘 살기가 너무 힘든데 뭐하러 돌아왔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세상이 예전보다 살기 좋아졌다는 어머니 말씀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세상이 좋아졌다고 행복한 사람도 더 많아졌다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국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고 하는 걸 보면 아닐 가능성도 많다.

그런데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느냐가 행복에 영향을 끼치는 변수인 건 맞지만, 그걸로 모든게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겠다. 아프리카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나도 행복할 수 있는거고, 한국에서 소위 ‘흙수저’로 태어나도 행복해지지 말라는 법은 없는거니깐. 다만 진짜 ‘세상이 좋아졌다’라고 할 수 있으려면 힘든 환경에서 태어나도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이 좀 더 넓고 다양하게 열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우리 아이 세대들이 살게 될 세상은 좀 그랬으면 좋겠다.

(2016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