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어느 주말이었다. 서준이가 아침 일찍 신이 난 표정으로 달려와서는 종이 몇 장을 내 앞에 자랑스럽게 내밀어 보였다. 보아 하니 엄마가 인터넷에서 여러 가지 시계 모양을 찾아 출력해주면 서준이는 그 밑에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을 적으며 놀았던 모양인데, 그날 아침 처음으로 모든 문제를 다 맞혔다고 그렇게 신이 났던 것이다. 기특해서 “이건 왜 2시 35분이야?” “이건 왜 9시 17분이야?” 하면서 대꾸해주다가 하필 ‘1시 59분’이라고 되어 있는 걸 가리키며 “이건 왜 1시 59분이야?”하고 물었다. 서준이는 아까와 같이 아주 당당하게 나에게 설명을 하려고 하다가 갑자기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차차. 그러고 보니 그건 1시 59분이 아니라 12시 59분을 가리키는 시계인데, 짧은 바늘이 거의 숫자 ‘1’에 붙어 있어서 서준이가 실수를 한 것이었다. 조금 전까지 너무나 행복해 보이던 서준이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부엌에 있는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간다. 잠시 후 울먹이는 서준이 목소리와 “이건 엄마도 미처 몰랐네. 헷갈리는 거라 틀릴 수도 있어”라고 위로해 주려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본의 아니게 서준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것이 미안해지는 한편, ‘사내 자식이 뭐 그딴 걸로 그래?’ 하고 화도 났다.

문득 내가 서준이만 할 무렵, 방학 숙제를 갖고 울었던 일이 생각났다. 만들기 숙제였는데 나는 마분지로 네모난 몸통에 타원형 머리가 달린 로봇을 만들려고 했었다. 마분지로 타원형 모양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 끙끙거리고 있었더니 아버지께서 보다 못해 도와주셨는데, 정작 로봇이 완성되고 나서 나는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다. 내 힘이 아닌 아버지의 도움으로 완성했다는 것이 왠지 속상했었나 보다. 그런데 그때 아버지께서 지으셨던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좋은 뜻으로 도와주려고 하신 거였는데, 내가 울어버리니 느끼셨을 그 난감함 가득했던 표정… 혹시 아까 서준이 반응을 보며 내가 지었던 표정도 그런 표정이었을까?

‘의도하는 바 (intent)’와는 달리 나의 언행이 본의 아니게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 (impact)’를 가져오는 경우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수도 없이 경험했었다. 주로 말을 거침없이 하는 내 스타일 때문이었던 듯 싶다. 한 번은 본사에서 온 고위 임원에게 이듬해 마케팅 계획을 마케팅팀 직원들이 발표하는 자리에서, 긴장한 직원의 발표 내용을 거들어주려고 내가 건넸던 말이 오히려 그 직원을 더 궁지로 몰아넣게 된 적이 있었다. 나의 의도는 그 직원을 도와주려 했던 것이었기에 사람들이 내 발언의 취지를 오해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을 때 나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 이후에 한 회식자리에서 나는 그 직원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언행을 평가할 때는 본인의 ‘의도 (intent)’가 무엇이었는가를 근거로 삼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관대한 반면,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는 ‘의도’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 (impact)’로만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관련해서 ‘Good communication is as stimulating as black coffee and just as hard to sleep after.’ 라는 격언을 읽은 적이 있는데, 누군가와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하고 나면 마치 좋은 커피를 마신 것처럼 기분 좋은 자극을 받지만, 그런 좋은 의사소통을 나누기란 블랙 커피 마신 후에 잠들기 쉽지 않은 것 만큼이나 (나는 40대 중반이 되면서 진짜로 그렇다 ㅠㅠ) 어렵다는 얘기인데 참 맞는 말이다.

회사에서 업무를 보는데 많이 사용하는 이메일은 ‘intent’와 ‘impact’의 불일치가 일어나기 쉬운 대표적인 도구이지 싶다. 흔히 의사소통에서 실제로 말하는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7%뿐이고 나머지는 표정이나 말투와 같은 비언어적인 요소가 차지한다고 하는데, 이메일은 글로 보여지는 내용만 있을 뿐 보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다른 비언어적인 여지가 적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다보니 이메일을 받고는 소위 ‘뚜껑이 열리는’ 때도 종종 있는데, 워낙에 보내는 사람이 무례하게 쓰거나 맥락 없이 쓰기 때문인 경우들도 많지만 읽는 내가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 해서 그럴 때도 많다. 그럴 때 바로 ‘답장’ 버튼을 눌러서 즉각 대꾸를 해버리고 나면 나중에 ‘에이, 조금만 더 참을걸’하고 후회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그럴 경우에는 답장을 썼다가도 즉시 ‘send (보냄)’ 버튼을 누르기보다는 ‘draft (초안)’ 박스에 넣어두고 시간을 좀 뒀다가 나중에 다시 한 번 더 읽어보고 그래도 괜찮으면 보내려고 애쓰는 편이다. 불필요한 문제를 줄일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인 것 같다.

이메일을 쓴 다음 바로 보내는 대신에 잠시 생각을 묵혔다가 보내는 것처럼, 누군가와 얼굴을 보고 대화할 때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그 즉시 내뱉기보다는 조금 더 생각을 다듬어서 말하는 것이 intent와 impact의 불일치를 최소화하는 방법일 수 있다. 내가 말하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나는 한번 입을 열면 가급적 끊기지 않고 줄줄 이야기하려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말이 끊기면 무언가를 제대로 모르거나 자신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무의식적인 강박감에 그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영어로 말해야 할 때는 더 그렇다.) 그래서 요즘은 의식적으로 말을 천천히 하고, 중간에 말을 잠시 멈추더라도 생각을 가다듬어가며 말하려고 하는 편이다. 마치 ‘보냄’ 버튼을 누르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는 것처럼.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실수를 전혀 안 할 수는 없는 법. 혹시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거나 오해를 사게 되면, 주저리주저리 변명 혹은 해명을 하기 전에 우선 사과부터 하는 게 제일 깔끔하다.

의사소통, 참 중요하고도 어렵다.

(2016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