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졸업하고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처음 받았던 과제 중 하나가 바르는 연고제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첫 프로젝트이니 만큼 의욕이 넘쳤던 나는 ‘연 매출 100억 원이 넘는 대박 나는 제품을 개발해야지’라는 내 나름의 원대한 포부를 품고 일을 시작했다.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내가 맨 처음 한 일은 도서실에서 자료들을 모으는 것이었다. 나는 연고제를 만드는데 사용할 수 있는 각종 성분에 대한 최신 자료들을 모아와서는 부지런히 읽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공부한 내용을 꼼꼼하게 정리한 내 연구노트는 박사학위 논문이라도 탄생시킬 것 같은 기세였다.

하지만 그렇게 며칠을 보낸 후, 팀장님이 나에게 일의 진척 상황을 물어보셨을 때 그제야 아차 싶었다. 나름 잘 해보겠답시고 준비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탓에 정작 변변한 실험은 한번 해보지 조차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바탕 꾸중을 듣고 나서 반성했다. 연고를 만들려면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한번 만들어보는 것으로 시작했어야 했다고. 소위 시행착오를 각오했어야 하는 것인데, 나는 철저하게 준비하면 실패 없이 한방에 완벽한 제품을 만들 수 있을거라는 착각을 했던 것 같다.

영어로 ‘quick and dirty’라는 표현이 있다. 재미교포 과학자를 직속 상사로 모시면서 많이 들었던 표현인데, 이분은 종종 나에게 무언가를 ‘quick and dirty’로 해서 가져오라는 주문을 하셨다. 처음에 그 표현을 잘 알지 못 했던 나는 일을 ‘더럽게 (dirty)’ 해오라는 말씀에 왠지 어감이 나빠서 기분이 떨떠름했지만 이내 그분이 주로 ‘어떤 일을 완벽하게 하려고 시간을 너무 많이 들이지 말고, 우선 대략적인 내용을 준비해서 빨리 논의를 해 보자’고 할때 그런 주문을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도 상사가 되어 직원들에게 업무를 지시해보니 오랫동안 혼자 끙끙대며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체적인 초안을 재빨리 잡아와서 그 방향이 맞는지를 확인하고 다음 단계에 대해 의견을 구하는 직원들도 있는데 상사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후자가 융통성이 있어 보인다.

일하면서 모든 것을 ‘quick and dirty’로 처리하면 안되겠지만 행동하고 부딪혀보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업무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이 효율적인 경우는 종종 있다. 어떤 사람이 ‘경험이 많고 노련하다’는 것은 어쩌면 주어진 사안이 철저한 분석과 꼼꼼한 계획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직관과 빠른 행동 그리고 시행착오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잘 판단해서 그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잘 찾는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Malcolm Gladwell이 쓴 <Blink>라는 책에는 숙련된 전문가들 (예컨대, 장군, 소방관, 응급실 의료진 등)이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내리는 직관적인 판단이, 다양한 변수에 대한 장시간에 걸친 철저한 분석보다 더 정확한 결론을 내리는 무수히 많은 사례들을 보여준다. ‘Thin slicing’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런 순간적인 판단력은, 의사결정을 할 때 지나치게 많이 분석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결론으로 이끄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순간적인 판단이 늘 최선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작가는 결국 어떤 상황에서 직관에 의지하고 어떤 상황에서 분석에 의지할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조금 허무한 결론같기도 하지만 사실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

생각해보면 직장에서의 업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살면서 어떤 중대한 결정에 직면할 때마다, 마음이 원하는 것과 이성적인 사고가 가리키는 방향이 다른 경우들은 종종 있다. 사안이 중요할수록 고민을 더욱 많이 하게 된다.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해본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보면 처음에 내 마음이 원했던 것이 왠지 위험해 보인다. 누구에게나 ‘실패’란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은 것이기에, 특히 나이가 들수록 실패에 수반되는 위험은 더 크게 느껴지기에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대체로 위험을 더 회피하게 만들고 결국 마음이 끌리지 않더라도 ‘안전한’ 선택을 하게 만들 확률이 높아진다.

나를 오랫동안 지켜본 한 친구는 언젠가 나에게 ‘너는 생각이 너무 많다. 하지만 생각은 더 많은 생각을 불러오고 그렇게 생각에만 계속 파묻히다 보면 정작 문제 해결에는 오히려 도움이 안 될 수 있다’고 했었다. 쉬운 말로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얘기다. 따져보면 내가 살면서 내렸던 무수한 결정들 중에는 오래 고민하고 계산기 튕겨보고 내린 결정들도 있었고, 이것저것 재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는 내가 원하는 대로 ‘질러버린’ 결정들도 있었다.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성공 확률이 높았는지는 딱 잘라 말하기가 힘들다. 내가 다른 결정을 내렸더라면 그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을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따랐던 경우에 후회는 덜 하게 되는 것 같다. 설령 그 결과가 좋지 않다 하더라도 ‘아, 이게 아니었구나’ 하고 실패를 교훈으로 삼는다. 반면에 이것저것 오랫동안 따져본 끝에 애초에 마음이 원했던 것과 반대로 결론을 내렸다가 그것이 기대했던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때는 그렇게 가슴이 쓰릴 수 없다. 마치 사지선다형 시험문제를 갖고 한참 고민하다가 막판에 답을 바꿨는데, 처음 찍었던 답이 정답이었을 때 느끼는 그런 쓰라림 같은 것이다. ‘에이. 그냥 처음 생각대로 할걸 ㅠㅠ…’

결국 후회가 적은 삶을 살려면 너무 많이 생각하고 위험이 가장 적은 선택들만 하며 살기 보다는, 마음의 소리를 잘 듣고 한번씩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실수와 실패를 맞닥뜨렸을 때 ‘이렇게 해서 또 하나 배웠네’라고 생각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20대의 꽃청춘도 아닌지라 인생을 어떻게 살지 그렇게 치열한 고민이 이제는 필요없지 않나 싶다가도, 다른 한편으론 내가 살아가면서 내려야 할 결정들이 (바라건대!) 아직도 무수히 많이 남아 있을거라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사고하고 선택하고 행동할 것인지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내 마음의 소리에 얼마나 더 귀기울일 것인가? 나는 얼마나 행동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나는 얼마나 위험을 수용(혹은 회피)할 것인가? 그나저나 이 나이에 이런 고민을 하고 있자니, ‘내가 이럴려고 나이를 먹었나’하는 자괴감도 솔직히 살짝 든다.

(2016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