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활주로에서 이륙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동안 깜빡 잠이 들었었나보다. 승무원이 무엇을 마시겠느냐고 묻는 소리에 눈을 떴다. 비행기는 이미 10,000미터 높이에 도달해서 날고 있다. 쥬스 한잔을 받아들고 주위를 둘러보니 오늘따라 비행기 안에 꼬마 승객들이 제법 있다. 바로 앞 좌석에는 돌을 조금 지난 듯한 아기가 의자 사이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눈이 마주치기에 방긋 웃어줬더니 아기는 웃지는 않고 신기한 듯 나를 더 빤히 쳐다본다.

왼편 앞쪽에는 젊은 아빠 하나가 일어서서 아기를 안고 이리저리 흔들며 달래고 있는데 아기는 어디가 불편한지 빽빽 울고 있다. 문득 ‘내 모습도 저러했겠구나’ 싶었다. 서준이가 아직 돌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처음으로 함께 비행기를 탔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서준이는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부터 울기 시작하더니 두시간 반 남짓 되는 비행시간 내내 거의 쉬지 않고 울어댔다. 주위에 있던 승객들이 보다 못해 ‘아이가 괜찮은거냐. 이렇게 해 줘봐라, 저렇게 해 줘봐라’ 라며 걱정해 주는데 나는 그들이 마치 나를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또 진짜 아이한테 어디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혹은 내가 아이한테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면서 머리속이 온통 하얘지고 나중에는 나도 울고 싶은 지경이 되었다.

아이들은 나에게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들이지만, 돌이켜보면 ‘아빠로 산다’는 것은 나에게는 늘 무엇인가 준비가 안된 듯 한 불편한 느낌이기도 했던 것 같다. ‘이렇게 하는게 맞는건가?’ ‘내가 아이들에게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자신감의 부족, 준비되지 않은 느낌은 어쩌면 처음 서현이가 엄마 뱃속에 들어섰을 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뱃속에서 꼬물거리는 아이와 교감을 나누며 기뻐하던 아내와는 달리 나는 막상 아이가 내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까지도 ‘이 세상의 다른 어떤 생명체가 나를 ‘아빠’라고 부르며 의지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고 좀 무섭기까지 했던 것이다.

서현이가 아기였을 때 한번은 주말에 갑자기 열이 치솟기 시작했었다. 처음에는 해열제를 쓰며 열이 좀 가라앉기를 기다렸지만 별 차도가 없자 아내는 아이의 옷을 벗긴 뒤 수건을 물에 적셔 몸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멍청하게도 그때 나는 물의 온도가 더 미지근해야 하는지 더 차가워야 하는지를 갖고 아내와 말다툼을 하고 말았다. 나중에는 이도저도 안되겠다 싶어서 아이를 들쳐 안고 동네 병원 응급실을 찾아나섰는데, 차가운 밤공기 속에 아이를 안고 달리면서 ‘바보같은 아빠 때문에 아이가 잘못 되기라도 하면 어쩌나’하고 무서워 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이 많이 커서 나도 이젠 ‘아빠’로서의 내공이 좀 쌓였을 법도 한데도 내가 아빠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불안감은 그 내용만 조금씩 다를 뿐 아직도 종종 맞닥뜨린다. 누구 말마따나 매 순간이 나에게는 첫경험이라 그런걸까? 애시당초 아빠가 된다는 자체가 처음이었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보는 것이 처음이었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보내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천성이 차분해서 집에서 노는것을 좋아하는 서준이를 보면 ‘내가 아이를 억지로라도 끌고 나가서 밖에서 더 놀게 해야하지 않나?’ 싶었고, 야생마처럼 천방지축인 서현이를 보면 ‘애를 조금은 붙들어 매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서 하기 전까지는 부모가 나서서 ‘공부, 공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그 흔한 학원 하나 안보내고 과외 하나 안시키면서도 ‘나중에 아이들한테 원망을 듣게 될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집에서만 놀기 좋아하던 서준이는 언제부터인가 동네 꼬맹이들 사이에 마당발이 되어서 친구들의 호출을 받아 나가놀기 바쁘고, 학교 마치고 돌아오면 가방 던져놓고 놀러나가느라 사라져서 얼굴 보기 힘들던 서현이는 새벽까지 방에서 꼼짝않고 했다는 과제물을 보여주며 나를 깜짝깜짝 놀래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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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가끔, 당신이 나와 우리 형제들을 키우실 때는 그저 먹고 살기에 바빠서 우리와 놀아주는 것은 커녕 우리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노는지도 신경을 못 썼다고 말씀하신다. 약간의 미안함이 담긴 말씀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애들 때문에 너무 안달복달 하지말라는 말씀같기도 하다.

미국의 저명한 여성 기업가인 Facebook의 Chief Operating Officer, Sheryl Sandberg가 쓴 저서 <Lean In>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직장에 다니는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과 함께 충분히 시간을 보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사실 객관적인 연구결과들을 보면 요즘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이 예전 세대의 전업주부 엄마들 만큼이나 많은 관심과 시간을 아이들에게 쏟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업주부 엄마들이 키운 아이와 직장맘의 아이들을 십여년 이상 추적해 봤을 때 두 그룹의 아이들 사이에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별반 차이가 없더라는 이야기도 한다.

어쩌면 아이들은 ‘불안하고 준비 안된’ 아빠, 엄마들보다 훨씬 더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어릴 때부터 어떤 식으로든 부모가 틀잡아줘야 한다’는 생각 자체도 ‘아이들은 부모 마음대로 틀 잡을 수 있다’는 그 전제 자체에서부터 잘못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꼭 해 줘야 하는 것은, 아이들이 살아갈 (내가 예측할 수 조차 없는) 미래의 ‘지도’를 직접 그려서 쥐어주려고 조바심 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데 필요할 도구들을 갖출 수 있게 도와주는 것 아닐까?  자존감, 호기심, 배려심, 인내심 같은 것들 말이다.

(2016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