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아이들이 개학했다. 새 학년을 시작한 첫 한주 동안 아이들과의 대화는 주로 ‘오늘은 새로운 친구를 얼마나 사귀었나’에 관한 것이었다. 아빠를 따라 여러 번 나라를 옮겨가며 전학을 한 까닭에 그때마다 아이들이 눈물을 쏟아야 했던 걸 생각하면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특히 서현이는 미국에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전학 간 첫날 아무도 자기 옆에 함께 앉겠다고 하지 않아서 무척 슬펐었다는 이야기를 몇 년이 지난 후에야 털어놓아서 내 마음이 더 아프고 미안했었다.

다행히 둘 다 별 어려움 없이 새 학년에 잘 적응하고 있는 모양이다. 서준이는 이미 새로운 반 친구들을 다 사귀었다며 뭐가 걱정이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되물어서 ‘쟤가 내가 알던 서준이가 맞나’ 싶을 정도이다. 서현이는 이번에 스스로 뜻한 바(?)가 있어 학교를 옮겼는데, 아무래도 전학생인지라 기존에 있던 아이들(특히 백인 아이들)의 단단한 inner circle에 끼어들긴 쉽지 않지만 자기 나름대로 같이 밥 먹고 놀 친구들이 이미 생겼다며 그리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매슬로우의 욕구이론 (Maslow’s Hierarchy of Needs)’이라는 것에 따르면 사람이 조직에 받아들여지고 소속감을 느끼는 것(belongingness)이 ‘생리적인 욕구 (physiological needs)’와 ‘안전의 욕구 (safety needs)’ 다음으로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욕구라고 한다. 소위 ‘왕따’라는 것이 당하는 사람에게 그토록 큰 고통을 주는 이유도 타인으로부터 받아들여지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극단적으로 억압하는 것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학교 다닐 적에 스타도 왕따도 아닌 아주 평범한 부류였지만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나를 미워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면 그것 때문에 퍽 힘들어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한 번은 어떤 친구가 나를 ‘이중인격자’라고 부르며 비난한 적이 있는데 그때 받았던 충격이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30여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어쩌다 한 번씩 떠오르곤 하는 걸 보면 더더욱 그렇다.

학창시절과 달리 직장생활에서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가 매우 공식적이고 정형화된 형태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매년 연말이면 거쳐야 하는 업무평가에 더해서 요즘은 다면 평가(360도 피드백)가 일반화 되어서 상사 뿐만 아니라, 동료와 부하직원들의 나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무기명으로 받아서 보게 되곤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보고서를 받아들고서 즐거워하거나 만족해하는 사람을 본 적이 드물다는 것이다. 보고서를 열어보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기도 하고 보고서를 읽고 난 후에는 우울감에 빠지거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이 보았다. 거기에서 나도 그다지 예외는 아니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듣기 싫은 소리 안 듣고 싶어 하는 건 대부분의 사람이 느끼는 인지상정이겠지만, 예수님 부처님이 아닌 다음에야 모든 사람에게 좋은 소리만 듣고 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하긴 예수님, 부처님조차도 싫어하는 ‘안티팬’들이 많이 있으시다.) 언제부터인가 ‘내 주변에 열 사람이 있으면 내가 그 열 사람을 다 좋아하지는 않는 것처럼, 거꾸로 내 주변의 열 사람도 다 나를 좋아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대만에 부임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간부급 직원들에게 따끈따끈한 다면 평가 보고서가 배포되었기에 그들에게 다음번 정기 면담을 할 때 각자 받은 보고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었다. 그런데 그중 한 직원이 유독 면담 중에 자신의 보고서 내용에 대한 이야기 나누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는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동료들이 자신을 인간적으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부당한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래서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그 직원에게 나는 동료들이 자기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모두가 자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울뿐더러 필요하지도 않다. 물론 서로 인간적으로 죽이 잘 맞고 사이가 좋으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고 협업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더 실현 가능하고 중요한 목표이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내공(미움받을 용기?)을 키우는 것은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것은 자신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채 (lack of self-awareness) 소위 ‘자뻑’에 빠지는 것과는 다르다. 남들과의 상대적인 비교에 의존해서 자기를 억지로 높이려는 ‘자존심’과도 다르다. ‘자뻑’은 스스로의 눈을 가려서 자아의 발전을 더디게 할 수 있고, ‘자존심’은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일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도 있다. 그보다는 자기성찰과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바탕으로 한 ‘자존감’을 키울 일이다. 그러고 보니 ‘자존심’과 ‘자존감’은 한 끗 차이인데도 이토록 같은 듯 다르다.

(2017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