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유명 연예인들이 자신들만의 은밀한 단체 대화방을 만들고, 그 안에서 온갖 음란물과 추한 이야기들을 나누어 왔다는 것이 세간에 공개되면서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매일 자고 일어나면 밤사이 밝혀진 그들의 새로운 악행이 뉴스를 도배한다. 예전에 아주 비슷한 일을 직접 다뤄본 적이 있기에 뉴스를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수년전 외국에서 근무할 때다. 어느날 인사팀장이 나에게 조심스럽게 보고할 것이 있다고 찾아왔다. 익명으로 접수된 사내 제보에 관한 것이었다. 내용은 기가 막혔다. 회사의 일부 임직원들이 대화방을 만들어 놓고, 다른 동료 직원들에 관한 부도덕한 내용들을 은밀하게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긴급하게 사내 변호사를 부른 뒤 인사팀장과 함께 셋이서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본사에도 즉시 보고하고 외부 법무법인을 통해 회사가 취해야 할 조치 및 책임의 범위 등에 대해 확인하였다.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관련자들을 면담해야 했는데 워낙에 많은 이들이 복잡하게 엮여 있었던지라 면담 순서 및 방식에 대한 면밀한 계획이 필요했다. 조사 및 검토를 수행하는데만 며칠이 걸렸고 모든 과정은 마치 007 작전을 하듯 조심스럽게 진행하였다. General Manager가 되면 온갖 상상해 보지 못했던 일들을 다루게 될 것이라더니 과연 그 말이 맞구나 싶었다.

사실관계의 파악이 다 끝난 후 징계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관련자들의 가담 경위나 정도는 저마다 다 달랐다. 사건의 조사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사이 이 사안은 이미 지사나 regional headquarter 뿐만 아니라 글로벌 본사의 최고위 임원들까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사안이 되어 있었다. 그만큼 지켜보는 눈이 많았고 처분해야 할 징계의 수위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다. 법률 자문들은 회사가 높은 수준의 징계조치를 내리는 것에 대해 무척 조심스러워했다. 행여나 누군가가 회사의 처분에 대해 불복하고 이에 저항할 경우에 회사가 오히려 위험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행동규범에 비추어 볼때 그들의 잘못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들도 많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들은 그 외에도 많았다. 일종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직원들 중 일부가 관련자들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선처를 요청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사안의 엄중성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나를 당황스럽게 하였다. 그러다보니 사건의 내막을 알지 못하는 임직원들 중에는 물의를 일으킨 당사자들을 동정하는 사람들도 일부 생겨났다. 아마 그들의 눈에는 오랜 시간을 동고동락했던 동료가 비교적 이방인인 나에게 박해(?)받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조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관계의 일부라도 직원들에게 설명해 주고 싶었지만 사내 변호사와 인사팀장은 절대로 그래서는 안된다고 나를 말렸다. 사건에 연루된 이들이 워낙 많고 특히 대부분이 관리자급 이상이다 보니, 이들에 대한 일괄적인 징계가 당장의 비지니스에 미칠 영향도 부담스럽긴 했다. 무엇보다도 어떤 결정을 내리든 당사자들의 인생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결론을 매듭짓기가 쉽지 않았다.

막판에 고심을 거듭하는 나에게 나의 상사가 말했다.

Taejin. You have to make up your mind. And you have to own your decision. (태진. 결론은 네가 내려야 해. 그리고 내려진 결정은 온전히 네것이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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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the right thing to do? (무엇이 옳은 일인가?)” 하버드 대학교 Michael J. Sandel 교수의 책 <Justice> (한국어 제목: 정의란 무엇인가)의 부제이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는 ‘The Trolley Problem’ 이라고 불리는 흥미로운 윤리적 문제를 소개한다.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 기차의 철로 앞쪽에 여러명의 인부들이 있다. 기차가 그대로 직진한다면 그들은 모두 죽게된다. 기차의 경로를 비상철로 쪽으로 바꿀 수 있지만 그쪽에는 다른 한명의 인부가 있다. 이 경우 무엇이 올바른 선택인가? 혹은 상황을 약간 바꾸어서, 비상철로는 없지만 기차가 지나갈 육교위에 한 거구의 행인이 있고 어떤 스위치를 눌러서 그를 선로 위로 떨어뜨리면 그는 죽겠지만 기차가 멈출 수가 있다. 이 경우 무엇이 올바른 선택인가? 윤리학에서 종종 사용된다는 이 딜레마를 처음 접했을 때, 비슷한 상황에 대해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리려 하는 나 자신의 반응이 스스로 당황스러웠었다. 정답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지만 Sandel 교수는 이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철학적 접근 방식만을 설명할 뿐 정답은 알려주지 않았다. 애시당초 이 문제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살면서 맞닥뜨리는 무수히 많은 상황들 속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종종 불분명하다. 하지만 정답이 없다고 ‘에라 모르겠다’ 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복잡한 문제에 대해 쉬운 해답을 찾으려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경직되고 단순화된 사고방식에서 오는 ‘cognition trap(인지함정)’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더 치열하게 여러가지 관점을 검토해야 하고, 자신이 사용하는 잣대가 올바른 것인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치열한 고민의 끝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서 적절한 타이밍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커다란 문제이다.

결정을 앞두고 고민을 거듭하던 그 때 당시 나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었다.

무엇이 옳은 결정인가? 법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과 원칙과 value라는 관점에서 보는 결정의 범주에 대해 많은 논의와 논쟁이 있었다. 둘 사이에 거리가 있을 때, balance를 맞추려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가?… (중략)…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리고 나중에 이 일을 돌이켜보며 두고두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오늘도 그때랑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다만 맞닥뜨리는 사안만 매일매일 다를 뿐이다.

(2019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