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던 <도깨비>라는 드라마에 “신(神)은 그저 질문하는 자일 뿐… 답은 그대들이 찾아라”라는 대사가 있었다. 자신에게 던져지는 가혹한 운명의 장난에 괴로와하는 주인공들에게 ‘나는 답은 관심없고 그저 질문이나 할테니 나머지는 당신이 알아서 하라’ 라는 식의 신(神)의 발언에 나는 ‘저거 너무 무책임한거 아냐?’라고 화가 났었다. 그런데 가끔 어쩌면 내가 일하는 모습도 그와 비슷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예를 들면 회사의 중장기 계획을 세우거나 이듬해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것, 혹은 영업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분기별 성과를 검토하거나 할 때면 내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직접 기획하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다른 사람들이 작업한 내용에 대해서 질문하고 따져보면서 최종 결과물을 도출해 내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하버드 마지막 강의>라는 책에서도 “유능한 지도자들은 자신이 모든 해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라고 한다. 질문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한 리더십 덕목인 셈이다.

그러면 질문을 잘 하는 법이란 무엇일까? 아마 거기에 대한 대답은 ‘무엇을 질문하는지’와 ‘어떻게 질문하는지’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질문하는 것이 효과적인가’에 대해서는 사실 책 한권이 나올 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기에 일단 여기서는 어떤 질문을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만 끄적여 보련다.

내가 거의 모든 경우에 잘 쓰는 세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

“Why? (왜요?)”
서현이, 서준이도 어릴 때 그랬지만 어린 아이들은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서 ‘왜요?’ ‘왜요?’ ‘왜요?’ 라고 끊임없이 질문한다. 유치원에도 안들어간 꼬마 아이가 ‘왜요?’하고 천진함과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물으면 그렇게 예쁘고 귀여울 수가 없다. 그런데 직장인에게 조직생활을 하면서 이 ‘왜요?’ 만큼 중요하고 유용한 질문은 없는 것 같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왜요?”라는 질문을 몇 번만 하다보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A: 중장기전략에서 2021년부터 2023년 사이의 인력계획에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B: 왜요? (Why?)
A: 이 기간 동안 기존제품 매출의 점차적인 감소가 예상되지만 신제품의 출시는 저희 원래 계획보다 늦어져서 그렇습니다.
B: 왜요? (Why?)
A: 본사에서 신제품 허가를 위해 제출해야 하는 자료의 공유 시기를 저희의 원래 계획보다 다소 지연시키겠다고 알려왔습니다.
B: 왜요? (Why?)
A: 본사 허가팀이 해당 신제품의 허가를 미국과 유럽에서 얻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이에 방해가 되는 업무의 우선순위를 낮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B: 왜요? (Why?)
A: 제품의 특성상 미국과 유럽의 규제당국으로부터 많은 어려운 질문이 예상되는데 해당 팀의 인원이 다른 지사들까지 지원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우려가 있는 것 같습니다.
B: 그렇다고 해서 왜 한국과 단순히 자료를 공유하는 것 조차 안된다고 하는건가요? (Why?)
A: 해당 제품을 다루는 본사 허가팀이 한국의 허가제도에 대해서는 익숙지 못한지라, 아마 한국에 자료를 공유하는 즉시 관련된 업무량이 가중될 것이라고 지레 걱정하는 것 같습니다.
B: 그러면 본사의 한국에 대한 그런 우려를 불식시켜서 우리의 원래 일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도록 합시다.

물론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예이기는 하지만 ‘왜요?’라는 질문을 반복하는 것은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더불어 꼭 필요한 행동계획(action plan)을 도출해 내는데 무척 유용하다. 실제로 경영개선기법 중의 하나인 Six Sigma에서도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5번 이상 ‘왜?’라는 질문을 하라고 하고 (5 Why’s), 또 ‘왜요?’라는 질문을 보다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돕는 ‘Fishbone Diagram’ 같은 분석방법도 있다.

“What if ~? (만약에 그게 아니라면요?)”

이 질문은 소위 말하는 ‘pressure test’를 할 때 대단히 유용하다. 보통 전략을 수립할 때는 내가 기본 전제로 삼고 있는 여러가지 변수들에 대한 가정(working assumption)이 무엇인가에 따라 상황인식이나 결론이 크게 달라지곤 한다. 따라서 내가 전제로 삼고 있는 가정이 맞지 않을 경우에도 내가 세운 계획이 여전히 유효할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계획이 필요한지 등을 생각해 보는 scenario planning이 꼭 필요한데 ‘What if~?’는 이처럼 다양한 상황에 대한 준비가 가능하도록 여러가지 option을 생각해 보는데 도움이 되는 질문이다.

“So what? (그래서요?)”

이 질문은 앞서 ‘why?’ 와 ‘what if?’라는 질문을 통해 도출한 여러가지 분석결과를 실제적인 계획으로 연결짓는데 필수적인 질문이다. 장황한 분석과 논의를 아무리 복잡하게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현재 혹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시사하는 바가 없다면 복잡하고 세련된 분석도 그저 한낱 말잔치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So what?’이라는 질문은 ‘그래서 어쩌라고?’와 같은 느낌인지라 회의석상에서 잘못 표현하면 자칫 시비를 거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서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실행계획의 도출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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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직원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분야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누구보다도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왠지 2% 부족하고 미덥지 못한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담당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해당 분야에서 쌓아온 지식들(Knowledge)이 자신을 남들과 차별화 시켜줄 자신만의 고유한 자산이자 경쟁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상 ‘지식’은 대개의 경우 대체 가능하며 따라서 그것을 자신만의 고유한 경쟁력이라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예컨대 꼭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유사한 지식을 갖고 있을 수 있으며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새로운 누군가에게 해당 업무를 맡겨서 조금 기다려주면 학습능력(learning agility)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그 분야의 지식은 다시금 얻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별시켜 줄 수 있는 것은 단순한 ‘지식(Knowledge)’이 아니라 ‘지혜 (Wisdom)’이며, ‘Data나 정보(Information)’가 아니라 ‘통찰(Insight)’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식에서 지혜를, 정보에서 통찰을 끌어내는 자신만의 방식이 그 사람의 진정한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다.

‘Why?’, ‘What if~?’, ‘So What?’ 은 그 과정에서 써먹기 좋은 일종의 치트키(cheat key) 같은 질문들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이런 질문을 자문자답 하다보면 남들보다 한걸음 더 들어가서 상황을 깊이 이해하게 되고 조금 더 실질적인 계획을 도출할 수도 있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이 질문들을 남에게 사용할 때는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도록 다분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내가 미국에 살다 한국에 돌아와 일한지 몇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동료 임원 한분이 내 첫인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처음엔 내가 엄청나게 공격적이고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었다. 내가 사사건건 “왜요? (Why?)” “그게 아니면요? (What if?)” “그래서요? (So what?)” 라고 물어대니 내가 시비를 건다고 느꼈던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미팅 중에 “There is no such thing as a stupid question (세상에 멍청한 질문이란 없습니다)”이라는 표현을 종종 쓰는데,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스스럼없이 질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격려할 때 쓰는 표현이다. 심지어 미국의 학교에는 “Ask a Stupid Question Day” 라는 것도 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질문하는 것의 중요성을 고취시키는 날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나마 여태까지 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눈치없이 ‘멍청한’ 질문을 남들보다 먼저, 남들보다 많이 해 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2019년 12월)